“김명립 대표, 쇼난 아이파크 ‘이노베이션 타이거’ 우승…페길화·전합성 기술로 약물화”,
“심장수술 관련 급성신손상 예방 임상2a상 진행…2027년 후속 데이터 확보 목표”,
“100억~150억원 시리즈C 투자유치 중…2028년 기술이전·2029년 IPO 겨냥”,

김명립 빌릭스 대표가 최근 광교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더바이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 이영성 기자)

[더바이오 이영성 기자] 심장수술이 끝나도 환자의 회복을 위협하는 고비는 남는다. 수술 과정에서 신장에 가해진 손상이 급성신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바이오텍 빌릭스는 이 합병증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색소 ‘빌리루빈’을 기반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빌리루빈의 항산화·항염증 기능을 신장 보호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도전은 최근 일본 신약 피칭대회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빌릭스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달 15일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파크(Shonan Health Innovation Park, 이하 쇼난 아이파크)에서 열린 ‘이노베이션 타이거 2026’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명립 빌릭스 대표는 빌리루빈을 의약품으로 개발하는 혁신적인 기술과 심장수술 환자 대상 고무적인 초기 임상 결과를 제시한 점이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고 봤다. 쇼난 아이파크는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있는 제약·바이오 중심의 연구개발·협력 단지다. 2018년 4월 일본 다케다제약이 자사 연구시설을 외부 기업·기관에 개방하면서 출범했다.

김 대표는 최근 <더바이오>와의 인터뷰에서 2027년 임상2a상 후속 데이터 확보를 토대로 2028년 기술이전, 2029년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겠다는 개발·사업화 구상을 밝혔다.

◇89개 팀이 지원한 아시아 피칭대회서 우승…약물화 기술·초기 임상 결과 제시

이노베이션 타이거는 아시아의 유망 신약 개발 기술을 제약사와 투자자에게 연결하기 위한 피칭·파트너링 행사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올해는 한국·일본·대만의 스타트업과 학계에서 89곳이 지원했고, 이 가운데 16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심사는 글로벌제약사인 MSD, 베링거인겔하임, 다케다제약, 아스텔라스, 에자이, 다이이찌산쿄, 주가이제약 등 내로라하는 제약기업 7개사의 전문가들이 맡았다. ‘타이거(Tiger)’로 불릴 만큼 깊이 있는 심사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평이 난 이들은 제약사 차원에서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본선은 팀별 6분 발표와 6분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빌릭스는 빌리루빈 기반 신약의 작용 원리와 개발 현황을 소개해 1위[아래 사진]에 올랐으며, 상금 300만엔(약 2500만원)을 거머쥐었다. 2위는 프레이저테라퓨틱스(Prazer Therapeutics, 상금 200만엔), 3위는 큐로젠(CUROGEN, 상금 100만엔)이 차지하며 한국 기업이 톱(Top) 3를 휩쓰는 쾌거를 거뒀다. 현장에선 수상자들을 향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사진 앞줄 가운데 인물이 김명립 빌릭스 대표. 쇼난 아이파크 이노베이션 타이거 2026에서 1등을 차지했다.[출처 : 빌릭스]


김 대표는 수상 배경으로 약물화 기술과 임상 진전을 함께 꼽았다. 물에 전혀 녹지 않는 빌리루빈을 주사제로 개발하고, 원료를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기술을 확보한 데 이어 환자 대상 임상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특히 임상 2a상 초기 코호트에서 확인한 유효성과 안전성 톱라인 결과가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행사는 해외 투자자와 접점을 넓히는 계기로도 이어진다. 본선 진출 팀에는 오는 12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콘퍼런스(SHIC) 2026’ 참가 기회가 주어진다.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제약사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등을 대상으로 일대일 미팅과 파트너링을 진행하는 자리다.

◇물에 잘 안 녹는 빌리루빈…’페길화’와 ‘전합성’으로 개발 장벽 낮춰

빌리루빈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포함된 헴(heme)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색소다. 황달과 연관된 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빌리루빈의 항산화·항염증 기능을 각종 염증질환, 암 및 대사질환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이어져 왔다.

신약 개발의 장애물 중 하나는 물성이었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빌리루빈을 외부에서 안정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빌릭스의 출발점은 전상용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의 ‘페길화(PEGylation) 빌리루빈’ 기술이다. 빌리루빈에 물과 친화적인 폴리에틸렌글리콜(PEG)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든 분자는 수용액에서 친수성 부분이 바깥을 향하고 소수성 부분이 안쪽으로 모이면서 나노입자를 형성한다.

김 대표는 2018년 유틸렉스를 나온 뒤 창업 아이템을 검토하던 중 지인을 통해 전 교수의 연구를 접했다. 전 교수가 보유한 기술 가운데 페길화 빌리루빈의 개발 가능성에 주목했고, 두 사람은 같은 해 빌릭스를 공동 창업했다.

약물화의 또 다른 과제는 원료의 품질과 공급이었다. 의약품으로 개발하려면 원하는 구조의 물질을 일정한 품질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김 대표는 “빌리루빈의 이성질체별 전합성 기술을 확보하고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개발 중인 후보물질 ‘브릭셀(BRIXELLE·개발코드 BX-001N)’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빌리루빈-3α’에 PEG를 결합해 만든 나노입자다. 관련 연구 논문에서도 합성 빌리루빈을 이용해 수용액에서 자기조립 나노입자를 형성하는 접근이 소개됐다.

특히 지난 2023년 6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독성 물질로 알려진 빌리루빈이 신약 소재로 재조명받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는데, 그 주인공이 세계 최초로 빌리루빈 약제화에 성공한 기업, 빌릭스였다. 당시 하버드대 교수의 전임상 연구 결과를 접한 사이언스 기자가 ‘이 연구를 실제로 치료제로 개발하는 회사가 있느냐’고 묻자, 교수는 빌릭스와 김명립 대표를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사이언스 기자는 김 대표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고, 기사에는 김 대표뿐 아니라 전 세계 빌리루빈 연구자들의 견해도 함께 담겼다.[아래 사진]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2023년 6월호에 실린 빌릭스 관련 기사 내용(출처 : 사이언스 일부 촬영)

페길화가 빌리루빈을 투여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기술이라면, 전합성은 원료의 생산·공급 기반을 마련하는 기술인 셈이다. 빌릭스는 두 기술을 결합해 빌리루빈의 생물학적 기능을 실제 의약품 개발로 연결하고 있다.

◇산화스트레스·염증 함께 겨냥…심장수술 관련 급성신손상 예방 임상

김 대표는 브릭셀의 특징에 대해 “항산화 작용도 하고, 항염증 작용도 한다”고 설명했다. 산화스트레스와 염증반응 등 여러 경로가 관여하는 장기손상 과정에 대응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개발 논리다.

주요 개발 대상은 허혈·재관류 손상 영역이다. 조직으로 가는 혈류가 줄거나 끊겼다가 다시 공급되는 과정에서 활성산소 증가와 염증반응 등이 발생해 세포와 조직이 손상되는 현상이다. 장기이식이나 심혈관 수술 등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허혈·재관류 손상 관련 질환에 대해 현재까지 승인된 표준치료법 및 약물이 전무하다.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분야다 보니 로슈,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등을 포함한 많은 다국적 제약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임상을 전개해 오고 있으나, 현재까지 임상에 성공한 기업은 없는 상태이다.

브릭셀을 평가한 전임상 연구에서는 신장 허혈·재관류 손상 동물모델에서 산화스트레스와 염증을 줄이고, 손상된 신기능을 개선하며 조직손상을 완화하는 결과가 보고됐다. 후속 연구에서는 신세뇨관 재생을 촉진하고 신장 섬유화를 억제하는 효과도 관찰됐다. 환자 대상의 임상은 이러한 가능성이 사람에서도 유효한지 확인하는 단계다.

현재 임상2a상의 적응증은 ‘심장수술 관련 급성신손상(cardiac surgery-associated acute kidney injury·CSA-AKI)’ 예방 및 치료이다. 심장수술 과정의 혈류 변화와 산화스트레스, 염증반응 등은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중증으로 진행되면 투석 등 신대체요법이 필요해질 수 있어 손상을 줄이는 예방 전략이 중요하다.

빌릭스는 앞서 호주에서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1상을 마쳤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 시험에서 브릭셀의 안전성과 내약성, 약동학을 평가했다.

국내 임상2a상은 무작위배정·단일눈가림·위약대조·다기관 시험으로 진행 중이다. 브릭셀을 정맥 투여한 뒤 신장손상 지표와 신기능 변화를 평가한다. 수술 후 90일까지 시험에서 정한 기준에 따른 신기능 저하, 신대체요법 개시,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을 포함한 주요 신장 사건(MAKE) 발생 여부도 살핀다.

김 대표는 “초기 코호트에서 고무적인 안전성·유효성 신호를 관찰했다”고 밝혔다. 이어 후속 코호트에 30명을 추가 등록해 임상2a상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가 제시한 후속 데이터 확보 목표 시점은 2027년 8~9월이다.

김명립 빌릭스 대표가 최근 광교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더바이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 이영성 기자)

◇2028년 기술이전·2029년 IPO 목표…시리즈C 100억~150억원 진행 중

빌릭스는 후속 임상 데이터를 기술이전 협상의 주요 근거로 삼을 계획이다.

김 대표는 “현재 글로벌 제약사들과 아시아권 기업 등이 회사의 기술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추가 환자군의 결과를 확보한 뒤 논의를 구체화해 2028년 중·후반 기술이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해외 파트너링도 이어간다. 김 대표는 “이달 일본 바이오재팬에서 제약사들과 만나 기술이전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월 보스턴 SHIC도 투자자와 사업개발 담당자들에게 임상 개발 현황을 설명하는 기회로 활용할 예정이다.

임상을 뒷받침할 자금 조달도 진행 중이다. 회사에 따르면 씨드부터 시리즈B 단계까지 누적 투자유치액은 335억원이며, 현재 100억~15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유치를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투자 라운드 구성이 마무리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 전략은 기술이전과 연계한다. 2028년 기술이전 이후 프리IPO 투자를 유치하고, 2029년 IPO를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평가 시점도 기술이전 진행 상황에 맞춰 정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기술성평가는 기술이전 전후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4개 질환군으로 적용 가능성 연구…롤모델은 ‘리제네론’

김 대표가 그리는 사업의 범위는 심장수술 관련 급성신손상에 머물지 않는다. 빌리루빈의 항산화·항염증 기능을 바탕으로 장기이식 과정의 손상 등 다른 질환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그는 “적응증 질환군이 현재 14개”라며 “빌리루빈과 관련된 여러 기술의 확장성을 높여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롤모델로 미국 리제네론을 꼽았다. 자신들이 선택한 기술을 오랫동안 개발하고, 좌절을 겪으면서도 신약으로 완성해낸 집요함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리제네론에 대해 “끈질김과 추진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빌릭스 역시 첫 임상 적응증에서 개발 근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다양한 적응증에서 기술의 가치를 입증해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을 구하는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명립 빌릭스 대표가 최근 광교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더바이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 이영성 기자)

이영성 기자 (lys@thebi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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